다시 태어나는 일

hessed 2011.11.02 07:42 조회 수 : 2870

 

Editor's Bench -다시 태어나는 것

'거듭남'에 대한 주제설교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직하게 말하면 우리는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있거나 부유하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 좋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타락한 눈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는 달리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모든 외적인 부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적으로는 소경이요 잃어버린 영혼이요 상실한 마음이며 심적으로 불안하며 불행한 인간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요한은 2절 초두에 사용한 '밤'이라는 단어로 그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어두움 혹은 밤이라는 것은 악의 영향아래 있음,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지함, 하나님의 생명을 상실한 상태를 예증하는 단어입니다. 요 1:5절에 '빛이 비취어도 어둠이 깨닫지 못함'이라 했고 3:19절에 세상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또 13:30절에는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버리고 다락방을 뛰쳐나간 시점을 '밤'이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사용해서 요한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간이 '시간적'으로 밤이었음을 밝힘과 더불어 니고데모의 영적인 상태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수에 대한 배척이 시작된 당시에 지체가 높은 몸으로 한 무명의 선지자를 방문했다는 것은 그에게 깊은 영적 갈증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접하고 무엇인가 범상한 것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또 그가 행한 기적들을 목격하고 또 들음으로 그가 하나님의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께 대한 그 정도의 생각들은 믿음으로서 충분한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2장 23절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기적을 보고 그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기적을 인정하는 영적 체험이 믿음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우리의 믿음이 보다 진지하고 심각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에 대해 듣고, 그가 신적 존재임을 인정하고 또 주관적인 영적 체험을 했다고 해서 곧 그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은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 했지만 외형적인 준수에 그쳤을 뿐이요(그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 중심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타고난 부드러운 성품이 있고 교육을 많이 받고 도덕적인 삶을 애써도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나면 우리 안에 성령의 감염을 받은 새로운 생명이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이 들어온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것은 예전의 나의 성품이 좀 나아진 것이 아닙니다. 전혀 나의 것이 아니던 새로운 성품이,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던 자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좋아하게 되며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비록 잘 안 될때가 많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려 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고 싶어 집니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안목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이것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하나님의 나라에, 영생에 동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물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로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오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식과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초월적인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오로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신비롭고 독특한 방법에 의해 우리 안에 새 생명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수양에 의해, 종교적 노력에 의해 훨씬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타고난 품성에 의해 사람을 좋아하고 도와주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뉘우치고 새삶을 살려고 결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길고 긴 인간의 역사,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불가함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이루시는 생명주심의 기이한 역사를 통해 주어지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우리 안에 성령의 감염을 받은 새로운 생명이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이 들어온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것은 예전의 나의 성품이 좀 나아진 것이 아닙니다. 전혀 나의 것이 아니던 새로운 성품이, 생명이 들어온 것입니다. 예전에 하나님을 모르던 자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좋아하게 되며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게 됩니다. 비록 잘 안 될때가 많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려 하게 되고 거룩한 삶을 살고 싶어 집니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안목이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이것은 고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듭나고 싶습니까? 저는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모두 다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자신이 깊이 진솔하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십시오. 나는 과연 거듭난 것일까? 니고데모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보다 더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거듭남을 사모해야 합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명령할 수 없고 요구할수도 없고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초월적이고 비밀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간절히 소원할 수는 있습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으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여전히 '구원을 받으라. 예수를 믿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거듭남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지만 소원하고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오늘을 다 지내기 전에 주님께 조용히 말씀드리십시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거듭나기를 소원합니다. 저는 거듭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겸비한 심령으로 주 앞에 나옵니다. 주여 저를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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