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Bench -"구원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내가 산다는 것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후반부에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담고 살지만, 또 한편으로 '내가' 육체(육신) 가운데 in the flesh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조금 모순되어 보이지요? 방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가 여기서는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실존입니다. 나의 삶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도 모순되는 말이 아니라 이율배반二律背反antinomy적인 성경적 서술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각각이 진리이면서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 서술의 관계를 이율배반이라고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면서 불행히도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내 맘대로 그릇된 삶을 살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은 악한 영을 담고 살던 때의 습관들이 몸과 마음과 정신 속에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내 인격이 육신의 그러한 습관을 드러낼 때 이전에 우리를 주장하던 악한 영의 영향을 따라 사는 것이 되고, 그것은 죄가 됩니다. 여기서 육신이란 하나님 없이 살던 때의 나의 자아, 혹은 하나님 없이 살도록 잘 길들여진 나의 옛사람을 말하며 그것이 나의 부활하지 않은 육체 속에 습관으로 남아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은 내 뜻에 따라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살아가려고 하는 교만으로 행하며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거스를 때가 무척 많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행하는 우리를 강압적으로 다루시거나 억제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 제어하시고 제한하실 때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오래 걸리시더라도 우리를 감화시키고 설득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게 되기까지 인내하시고 사랑하여 주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3,14).

  

왜 이런 말씀을 길게 드리느냐 하면, 많은 성도들이 예수 믿고 난 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성경적으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 속에 옛사람의 습관이 드러날 때, 죄를 지을 때, 생각한 것만큼 착해지거나 선을 행하지 못할 때, 자신 자신을 비난합니다. 다른 사람의 그런 모습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 됩니다. 그런 일이 오래 지속되면 '도대체 난 뭐냐?', '신자로서 난 어떻게 된 거냐?', '너는 예수를 믿기나 하는 거냐?'라는 아주 본질적인 의문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나 구원 받았다는 기쁨은 사라지고 자신의 삶의 현상과 상태로 인하여 낙심하고 침체됩니다. 혹은 간혹 선행을 하거나 변화된 모습을 보이게 되면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자만한다든가, 자신의 영적인 능력이나 상태에 대해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삶에 어떤 좋은 것이 나타난다 해도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의 생명의 표현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를 평가하고 인식하는 것을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복음의 요체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음으로 달라지는 것은 나의 모습, 나 자신의 인격이 아닙니다. 내 안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악한 영이 지배하던 나에게 이제 그리스도가 들어와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육체를 벗을 때까지 아마 별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는 순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0,31).

  

이 말씀에 크게 유의하십시오. 우리 인격자체가 의롭고 거룩하고 사랑하는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의와 거룩과 사랑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담고 있게 된 것입니다. 나와 연합해 계시는 그분이 바로 의와 거룩과 사랑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이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야 하는 과정임을 알지 못할 때, 혹은 왕성한 자아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남아있을 때, 자꾸만 '자기 자신'이 착해지고 의로워지고 거룩해져야 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한 착각은 매우 열심인 종교생활을 하게도 합니다. 사라지지 않는 정죄감과 죄책감, 그로 인해 반복하는 뼈아픈 회개와 새로운 결단, 윤리도덕적인 실천 등으로 점철되는, 자기 자신을 지치게 하는 열심을 내게 합니다. 게다가 그런 모습은 탁월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이, 삶의 외형은 다소 반듯해진듯하지만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은 없이 타인에 대해 비판적이고 메마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소진되어 갑니다.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메마르며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별반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라고 부르는 일조차도 나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자께서 성부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사는 삶이 신앙생활인데 우리는 그것을 가로 막고서 나 자신의 선함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쯤 되면, 갈라디아서 2:20의 진리가 삶에서 내적 외적으로 '실체화'되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처음 예수를 믿는 그 순간부터 이미 계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내 힘과 노력으로 거룩에 이르려는 열심을 내면서, 예수를 믿으니까 적어도 이 정도는 착하게 죄 안 짓고 살아야 한다는 기준과 노력으로 살아오는 동안 -그것은 참으로 선한 의도인 것 같은데도- 그리스도가 계심이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아의 힘이 다 빠져서 탈진하고 더 이상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모습을 실체로 드러내십니다. 이런 일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오기도 하고 삶의 여러 가지 실패나 좌절 때문에 좀 더 일찍 오기도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 체력이 줄고 인생의 가능성이 점점 작아질 때, 그리고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아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경험할 때 이런 은혜가 찾아 들게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사건 없이도 그러한 체험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이것은 대단한 은혜의 선물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또 큰 문제는 신자로 살아가는 동안 죄에 빠지거나 연약함을 계속 드러날 때, 스스로, 또는 타인의 정죄로 인해 나 자신이 나빠졌다거나 영적으로 퇴보했다거나 껍데기뿐인 그리스도인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또 예수를 거부하는 세상 속에도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다 나쁜 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도덕적 노력이나 이타적인 삶의 자세가 두드러질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선은 그들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외적인 영향력 때문입니다.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속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미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것조차 없다면 세상은 아마 고스란히 지옥으로 변해 있겠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어떤 선한 일도 그로 인해서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선을 행하는 것 같아도 그 자신이 담고 있는 악한 영의 존재로 인해 여전히 악한 자이며 죄인일 뿐입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예수의 영을 담고 살게 된 자들,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자들은 그들이 겪는 외적인 악한 영향력으로 인해 죄를 범하고 악한 일을 할지라도 악한 자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들의 행함과 관계없이 그들은 선하고 의로운 자이며 사랑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선과 악은 우리 자아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담고 있는 영이 누구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고 계시며 그분이 나의 진정한 자아임을 계속 되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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