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에베소서 1:3-14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게 하려 하심이라
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믿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교리 1.우리는 신성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이심을 믿는다.

들어가는 말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다고 합시다. 무성한 잎으로 뒤덮혀 있고 봄이 되면 수많은 꽃들이 펴서 향내를 풍기다가 여름철에는 탐스러운 많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푸른 가지와 잎들은 시원한 그늘을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꽃은 향내를, 열매는 기가 막힌 맛을 선물해 줍니다. 그런데 가을이 오고 찬 바람이 불고 눈발이 흩날릴 때면 모든 나뭇잎이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가지와 대지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의 둥치가 다 드러나 보입니다. 겨울이 오기까지는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사실 그 나무의 생명의 풍성한 모습들을 지탱해 준 것은 그 나무의 둥치와 크고 작은 수많은 가지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기독교 진리의 대강을 간추려서 전체적인 골격을 형성해 놓은 것이 교리입니다. 교리라는 말은 다소 딱딱한 느낌을 주는 말입니다. 선뜻 호감이 가기 전에 딱딱하거나 재미가 없을 것 같은 선입견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 기독교의 은혜의 진리가 올바르게 서고 그 안에서 죄인들이 구원을 받고 풍성한 생명을 얻는 데 있어 교리의 존재는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대지에 깊이 뿌리 내린 둥지와 많은 가지들이 없이는 아름다운 꽃도 맛난 열매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교리는 교회라는 집을 두르고 있는 담장과도 같습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먼저 세우는 골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골조가 빈약하거나 잘못 세워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자재로 채우고 실내 장식을 하더라도 집으로서의 구실을 잘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골조를 세우는 일이 집을 짓는 일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지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익숙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올바른 교리의 골격 위에 우리의 신앙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교회 역사적으로 경건하고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은 올바른 교리를 정리하고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생명을 던지곤 했습니다. 사단은 필사적으로 이단적 교리를 교회에 심으려고 애를 썼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은 헤아릴 수 없는 순교릐 피를 뿌리면서 교리를 사수했습니다. 그런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선물된 것이 정통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이러한 교리에 대한 설교는 여러 차례 다른 설교 속에 포함되어 언급되었지만 이제부터 좀 더 체계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21세기를 향한 비젼 사역을 앞에 두고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공유할 교리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교리

에베소서의 서두에 나오는 이 탁월한 기술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합력하여 역사하심에 대한 계시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셨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어 한 점의 흠도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만드시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의 뜻에 순종하시어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영원한 구속의 대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오는 세대의 사람들에게 그 복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시며 그들의 구원에 보증의 인을 쳐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들을 통해 교부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동등하게 가지신 세 위격의 하나님이 계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누어 드린 '신조' 중에서 제1번, 또는 앞 페이지에 나온 첫 번째 교리를 크게 같이 읽어봅시다.

 

 

동일한(하나의) 신성, 세 분의 위격 (Three Person In One Godhead)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습니다. 믿음이란 것은 어떤 존재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그 대상을 알 때 우리의 인격 속에 생겨나는 마땅한 반응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의 대상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오로지 그 분이 스스로를 우리에게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계시의 내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거나 혹은 어떠한 당위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계시된 그대로를 우리는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계시의 내용에 대해서 성경에서 스스로 해석될 수 있는 것 외에는 지나친 상상이나 억측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삼위일체(Trinity)라고 표현합니다. 우선 이 단어를 풀이하자면 '세 위격의 하나님이 하나를 이루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은 세 분이시면서 동시에 한 분이다'라는 숫자적인 해석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모델이 나오기도 했으나 대부분 이단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된 것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세 분(삼위)의 하나님이 소개됩니다. 오늘 본문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그 세 분의 하나님은 본질상으로는 하나(동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교회신조에서 '신성(Godhead)'이라는 단어로 기술했는데, 신적 속성(Divinity)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적 속성들, 즉 하나님으로서의 거룩하심, 영원하심, 광대하심, 전지 전능하심, 자비와 사랑의 은혜가 크심, 권능과 위엄과 모든 영광에 있어서 완전히 동일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세 위격의 하나님들이 신적 본성에 있어서 조금의 차이도 없이 완벽하게 동등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를 '어떻게 셋이 하나가 될 수 있는가?'라는 숫자적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부연하여 설명하자면 성경의 교리들과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는 늘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터득할 수 있을 만큼 드러내어 우리가 참 하나님을 알고 경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삼위 일체'를 논할 때 숫자의 개념보다는 왜 이 교리가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가를 자문하면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의문을 가지고 말씀을 보도록 합시다.

 

성경은 처음부터 세 위격의 하나님이 있으심을 시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1:1,2

 

이 말씀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과 능력의 충만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직 혼돈과 공허 속에 있는 창조 전의 세계 속에서 성령님은 마치 새가 자기 둥지 위를 맴돌 듯이 운행하시고 계셨다고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

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1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올 때는 성부, 또는 삼위 하나님 전부를 가리키거나 신성을 말합니다. 이 구절 끝의 '하나님'은 성부를 지칭하기보다는 신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3절에 그 분도 창조에 동참하셨음을 선포합니다. 요한복음의 주제는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다고 하시고(요1:18), 또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요14:9)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성의 동일하심입니다. 또 예수님은 성부에게 부탁하여 성령님을 보내시는데 이 분 역시 동일한 하나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창조로부터 피조세계의 모든 운행을 주장하시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성전, 즉 하나님의 전이라고 합니다(고전3:16). 그 외에도 사도행전 5장 4절에 성령을 속인 아니니아의 이야기나 누가복음 13장의 성령의 신적 위엄을 공언한 말씀들을 살펴보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잡한 존재 양태를 취하시는 가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이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그냥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갖은 억측과 추리를 동원해서 무지한 추론을 이끌어 낼 이유가 없습니다. 측량할 수 없이 크신 영이신 그 분을 우리의 이성 안에 집어 넣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 위격의 하나님으로 온전하게 동일하신 본질을 가진 신성으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사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삼위일체의 교리를 가지고 물고 늘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약화시키거나(아리우스나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이) 세 개의 위격을 하나라고 반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 분의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으로서의 충만한 신성의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하난미을 말할 수 있도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어떠한 순서가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그 순서는 이러합니다. 성자는 성부의 아들이시며 성령은 또한 성자의 요청에 의해 성부로부터 또한 성자로부터 보내지는 분이십니다. 성자는 성부에게 온전히 순종하시며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성령은 스스로의 신적 영광을 소유하시며 동시에 성부와 성자에게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그 신성의 우열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 분 하나님 사이의 연합된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의 사역

세 분의 하나님이 창조라는 위대한 사역을 이루심에 동참하심을 이제 우리는 압니다. 그것처럼 또 구속의 사역에서도 본문이 보는 바와 같이 공동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성부는 구속의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그 자녀들을 섭리 가운데 예정하십니다. 성자는 성육을 통해 대속의 피를 흘리시고 그 구속사역을 '성취'합니다. 성령은 그 구원의 사역이 오는 세대의 모든 신자들에게 효력을 발생하도록 복음을 들려주고 깨닫게 하시며 내적 부르심을 주셔서 중생하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화와 영화의 과정을 이끄시며 그들의 구원의 보증의 인치심이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계시 앞에서 그것의 논리적 타당성을 논하기 보다 본문의 말씀대로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엡1:6,12,14).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를 인식하면서도 그를 대적하여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며 세상의 허무한 우상들을 대신 섬기며 살았던 죄인들입니다. 본성적 욕망에 끌리어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파괴적인 삶을 살던 우리와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영광의 세 분 하나님께서 영원하고 위대한 구원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를 발견한 사람들로서 우리가 어찌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잊으려 하거나 두려워하며 피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개별적 관심과 사랑과 희생을 주심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득한 하늘 저 멀리 초월해 계시는 우주의 주인이시며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시기 위해 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임마누엘로 임하셨습니다. 그의 낮아지심,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정말 우리에게 대한 그 분의 더할 나위 없는 사랑과 희생의 나타내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계시를 들려주시고 깨달음과 거듭난 생명을 주셔서 우리 속에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랑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만약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가 겪어야 할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지 아십니까? 인간의 타락이 가지고 온 죄의 가공할 위력과 파괴력 아래에서 상하고 부서진 세상과 인류를 보십시오. 우리 속에 퍼 내도 퍼 내도 없어지지 않는 죄의 흙탕물을 보면서 타락한 인간의 죄성에 대해 아파하고 애통해 본 사람은 구원의 위대함, 그 선물의 측량할 수 없는 고귀함을 아실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선물을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시는 은혜의 놀라움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존하시는 완전한 신성을 가지신 세 분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구원의 놀라운 일을 세세토록 감사 찬양해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

세 분 하나님의 존재 양식의 또 하나의 독특한 점은 그들의 온전한 연합

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요17:1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 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 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요17:20-23

 

성부는 성자 안에, 성자는 성부 안에, 성령은 성부 안에, 또한 성부는 성령 안에 온전히 연합하여 계십니다. 이것을 Mutual Dwelling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연합은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 힘든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의 불화나 반목이나 차이나 갈등과 같은 것이 없는 완벽하고 지속적인 사랑의 연합의 관계를 말합니다. 세 분의 하나님은 그 신성과 연합의 온전함에 있어서 '하나'이십니다. 이 온전한 사랑의 연합 속에 신비로운 신적 공동체를 이루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들의 형상으로 창조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사랑의 교제의 연합을 누리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목도하는 것이 우리 신자의 최대의 소원이라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사실을 세상이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온전히 하나됨으로 입니다. 세 분이 동일한 신성을 가지심에도 불구하고 순종을 보이심, 죽기까지 복종하심, 서로의 영원한 사랑과 연합,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위대한 역사, 이러한 것들이 우리들에게 나타내신 삼위일체 교리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이 위대한 진리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삼위 하나님의 신비로운 영광과 위엄을 바라보며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왜 그토록 위대하고 엄위로우신 하나님이 나같은 죄인을 살리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한 것도 아닌데 오랜 세월을 참고 참으시며 설득하시고 인도하셔서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그 다함이 없는 사랑을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조건도 없고 무한하며 변함없이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영원한 인격과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바로 붙잡히면 인생은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구할 것도 바랄 것도 이룰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내가 살았어야 할 올바른 삶의 모습을 되찾으며 새 힘을 얻으며 세 분의 하나님가과 함께 매일 매순간을 동행하다가 마침내 완성된 천국에서 그 분들을 뵙게 될 것입니다.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까요?

2. 삼위일체에 대하여 자신의 언어로 정의해 보십시오. (오늘 배운 말

씀을 정리해도 좋습니다)

3. 삼위일체는 존재론적으로보다 구원론적 차원에서 먼저 설명이 되어

야 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각각 설명해 보십시오. (에

베소서 1장 참조)

4. 삼위 하나님의 연합(요 17장 참조)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줍니까?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신앙생활활속에서 어떤 영향을 주며

우리는 그러한 연합됨을 잘 누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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