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왕의 왕, 주의 주

역대상 19:10-13

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광대하시고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2.우리는 창조, 계시, 구속 및 최후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다.


들어가는 말

언젠가 저의 설교에서 ‘하나님은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귀한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 나가신다고 했습니다. 그 약속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매우 축약한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렘 31:33


우리는 이 언약을 받아들인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말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침례 고백문(Baptismal Confessional Formula)인 로마서 10장 9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한 것이 한 사람의 신자 됨을 증거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나의 왕으로, 주님으로 모셔 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과 주’로 모심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오늘 교리 설교의 두 번째 항목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네 가지 위대한 포괄적인 행위, 즉 창조, 계시, 구속과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선포하심이요 우리가 그의 백성이 됨은 그 다스림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순종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지식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경박한 이해

교회 역사를 통해 늘 그래왔지만 특히 이 시대에 편만한 잘못된 사조는 하나님을 인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경향이 인본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기를 지나면서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그리고 과학문명주의 시대를 맞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재발견과 더불어 하나님께 대한 신비의 많은 부분들이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생겨난 것이 인본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기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영적, 육적 결핍이나 문제에 기인하여 종교를 찾습니다. 그렇게 예수를 믿기 시작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올바르게 구하고 성경적 양육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잘 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늘 자신의 어떤 필요를 채우시고 도우시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 인양 착각할 수 있습니다.


즉,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이 ‘허허’웃으며 용서해주시고, 물질적 필요에 대해서는 즉각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엄마 같이, 위험이 닥칠 때는 911처럼, 외로울 때는 연인같이, 갈 길을 잘 모를 때는 여행 안내원같이, 앞뒤가 꽉 막힐 때는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하인같이, 병들었을 때는 허준과 같은 명의나 예진이와 같은 간호사처럼 움직여 줄 것을 암암리에 기대합니다.


사실 성경의 많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우리의 목자요, 어머니이자 아버지이고, 방패와 산성이라 하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묘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대들 자체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과연 우리가 그러한 기대를 가진 마음들 위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자신의 필요들이 채워지지 않을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고 의심하여 불신 속에 사랑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주권적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주권자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읽어보십시오. 이 말씀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면서 찬송한 것입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송축을 올립니다. 이것은 또한 히브리서의 말씀에 언급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3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를 통해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1:15


그래서 하나님은 만유의 머리(주, 왕)가 되셔서 천지만물을 친히 붙드시고 다스리십니다. 인류역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주장하시고 그 유구한 역사를 오직 당신이 목적하신 바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본문 12절에 ‘계시’하신대로 그 분은 창조와 계시의 주권자이십니다. 천지가 지어지기도 전, 창세전에 구원 받을 백성을 예정하시고 구속의 대 역사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래서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라”(요1:13)고 하신 것처럼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심판의 주권자이십니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범죄한 인간에게 벌을 내리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인간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쥐고 계시고 결국 모든 인간은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결산할 날이 올 것입니다(롬2:6,7; 고후5:10).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히9:27). 우리의 영원한 운명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의 나타나심

그런데 ‘하나님의 주권’, Sovereignty나 Lordship이라는 말은 자주 들어도 감이 탁 잡히질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만유의 주요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방식을 섭리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주권은 섭리로, 섭리는 창조, 보호, 유지, 인도, 공급, 구원, 보장, 위로, 권계 등의 구체적 행위들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천지의 모든 일들을 그가 하시고자 하는 바대로 지혜로 작정하시고 작정하신 것들을 권능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 천체와 바다와 산맥과 동물들과 인간의 역사와 계획과 의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의 다스림을 받아 움직이며 세상에서 하나님의 결정이 아니고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2항의 고백입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들아 나를 떠날지어다

그들이 주를 대하여 악하게 말하며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으로 헛되이 맹세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 시편의 글이 문학적 과장법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이것이 우리 모두의 절절한 고백으로 소유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원한 운명까지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 아래에 있습니다.


숙명론인가?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인간의 일들을 운명으로, 또는 우연으로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현상을 ‘자연법칙’이라는 일종의 운명론으로 받아들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우연과 우발적인 사건, 행운과 불운이 겹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알아내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해보려고 합니다. 힌두교는 그것을 Karma라고 하고 이슬람에선 위대한 숙명론 ’알라의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인과율을 중심으로 한 윤회의 법칙을 주장합니다. 숙명론이란 인간의 운명에 대해 인격적 존재의 개입을 배제하는 사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숙명론에 빠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만물의 질서, 이유, 목적, 필연성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비밀이라고 하는데 만유를 향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너무나 깊고 비밀스러워서 인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유를 움직이는 ‘제1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고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운명’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텔레비전의 원리와 방송국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TV를 ‘요술 상자’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천지만물이 저절로 자연현상의 결합과 진행으로 생성되었다고 하는 진화론자의 입장도 그에 기인합니다. 그들에게는 천체가 ‘빅뱅’에 의해 생겨난 것이며 블랙홀은 별들의 무덤일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을 만드셨고 움직이고 계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삶이 운명의 맹목적 충동에 의해 결정 지워진다면 얼마나 허무한 것입니까? ‘알라 신’의 숙명론처럼 인간을 마치 공을 던지며 노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입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만 둘러보십시오. 인간의 불행을 눈여겨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갈등과 헤어짐, 원치 않는 병고와 연약함, 사회악들, 인신매매와 성폭행과 유괴 살인을 생각해 보십시오.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과 가족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실직과 가난과 자살과 인류역사를 피로 물들여 온 전쟁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종교의 이름으로 치러졌던 수많은 전쟁들, 교파와 교리의 차이로 서로를 불태워죽인 수많은 사건들, 지구촌 한 구석에서는 너무 먹어서 병들어 죽고, 다른 한 쪽에서는 기아로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는 뼈만 남은 아프리카의 영아들이 있습니다.


또한 아무런 잘못 없이 타인의 실수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 태어나기도 전에 의사들의 수술대에서 생명을 피우기 전에 죽는 어린 생명들, 청춘의 꿈을 피워 보기도 전에 어린 나이에 병사하거나 전쟁에서 죽는 생명들, 다 키워 놓은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은 부모들의 찢어지는 가슴, 가깝게는 나 자신도 언젠가 늙고 노쇠하고 약해져서 병들어 자신의 섭식과 배변까지 남에게 의지한 채 인생의 황혼을 맞아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우연과 숙명에 맡겨져 있다면 여러분의 느낌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섭리로 인생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온전한 주권적 섭리로 우리의 삶을 주장하십니다. 성경의 교리 중에서 이것만큼 우리에게 위로와 확신과 평안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영원하고 완전한 계획과 목적을 두고 만유를 권능으로 움직여 가고 계십니다. 온 우주 안팎에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는 일어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의 모든 현상도 주장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시는 도다…….광풍을 평정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 도다" 시107:25 하나님은 ‘강한 바람을 보내사 폭풍을 일으키셨(욘1:4)’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태에서 친히 만드신 분입니다. 그래서 ‘태의 열매는 여호와의 상급(시127:3)’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자식이 없다고 울부짖는 라헬에게 ‘그대를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나무랐습니다. 또한 아모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묘성과 삼성을 지으시고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 암5:8


우리가 제1원인을 모른다면 우주 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만물의 섭리자이심을 보이기 위해 여호수아 시대에 해를 중천에 머물러 종일토록 내려가지 않게 하셨습니다(수10:12).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천재지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역사일 뿐입니다. 메뚜기 재앙이나 지진이나 한발과 같은 재앙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주는 만유의 주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역상29:12). 인류역사에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나라들을 보십시오. 그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로 움직여진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의 흥망성쇠의 예언을 보십시오. 천하를 호령하던 고레스왕이나 알렉산더나 아우구스투스 황제나 진시황이나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까지도 마치 장기판의 말을 옮기듯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부러진 뼈를 붙이고 항생제를 퍼붓고 수술로 암덩이를 제거한다 해도 우리는 그 생명을 하루도 연장할 수 없으며 그 모든 세포가 재생하고 병균이 죽고 암을 이기는 생명의 힘은 하나님의 섭리의 능력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자녀를 아무리 정성스럽게 길러도 반드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아로 천덕꾸러기로 자란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귀하게 대접 받고 자란 사람도 남을 해치며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욥같이 의로운 사람이라도 뜻하지 아니한 불행을 당하는 경우가 이 세상엔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섭리에 민감하지 못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침착한 마음으로 배우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대해 무조건 받아들이고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나의 최선을 다하고 노력을 하지만 반드시 나의 원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사가 틀어지고 엉망이 되고 내 인생이 때론 망가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불행을 헤어나지 못한 채로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우리가 굳게 붙들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 분이 우리에게 가지신 섭리는 완전하시고 선하셔서 다함이 없는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천지 만물에, 그리고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섭리는 만유를 위한 최상의 것이며 완전하고 지혜로우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의 그 무한한 깊이를 도저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때로는 실망하고 좌절하고 슬퍼하며 분노하고 불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그 섭리를 인정하고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3-36


우리의 위로가 되는 섭리

하나님의 섭리는 자기 백성에게 인내를 가르치고 사악한 감정을 교정하며 방종을 억제하고 혹은 자기 부인을 실천하게 하고 혹은 나태를 일으키며 교만한 자를 낮추고 불경건한 자의 교활함을 좌절시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섭리를 숙고함으로 이러한 유익한 결론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바로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는 온전하며 만유를 위한 최선 최상의 것이며 우리를 향하신 절대적 사랑을 결코 벗어나지 않으신다는 것을 굳게 믿으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관한 교리는 우리에게 무한한 위로와 안식과 평강을 줍니다. 섭리의 하나님은 당신의 주권을 선포하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작은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영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 사40:12,13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둥근 땅 위에 앉으시나니 땅에 사는 사람들은 메뚜기 같으니라 그가 하늘을 차일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같이 치셨고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 그들은 겨우 심기고 겨우 뿌려졌으며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이 입김을 부시니 그들은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 같도다 거룩하신 이가 이르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를 그와 동등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40:21-31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만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십니까?(마10:29) 때론 극한 역경 속에 처한 사람들,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암담한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 의심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믿음을 구해야 하고 믿음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그 주권적 섭리는 마침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와 만유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질서와 최상의 복을 누리게끔 목적되었고 계획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보증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십자가의 사랑이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이를 위해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이 모든 것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찬양하며 그것을 순종하는 일은 가장 위대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나중에 총리가 된 후 7년의 흉년기에 만난 형들을 만났던 일을 보십시오.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후 다시 만났을 때 보복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요벳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45:5-8


요셉이 노예로 팔리던 때에 하나님의 섭리의 위대함을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계시가 있어서 하나님의 섭리의 위대함과 오묘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갈 때 사울의 일가 ‘시므이’가 독한 저주를 퍼부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이해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삼하16:5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의무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수수방관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이십니다(잠16:9). 우리는 앞날을 준비하며 모든 문제를 계획할 때 하나님의 섭리를 염두에 두고 해야 하며 하나님의 의지에 항상 복종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섭리로 인생의 한계를 정하셨고 그

것을 잘 돌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죄악까지도 섭리 가운데 있다고 하여 죄악을 관용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주권적 섭리 가운데 악을 즐겨 하시지 않습니다. 원치 않으시는 악을 허용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도 하나님은 그것을 원용하시어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섭리의 권능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섭리를 찬양하라

헨델의 ‘할렐루야 코러스’에서 반복되는 찬송시가 무엇입니까? ‘만유의 주가 다스리신다!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왕의 왕, 주의 주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교리에 대해 아더 핑크는 ‘그 주변에 많은 위성을 거느리고 있는 태양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메시지, 선교의 대강요가 무엇입니까? 지상의 만민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주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민과 사건들이 그 분의 주권과 섭리 하에 있음을 선포하고 그 섭리적 은혜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천지를 지으시고 만유를 다스리시며 우리의 운명의 세세한 부분까지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며 평안과 안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애를 쓰고 나름대로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삶에는 늘 문제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절대로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몹시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도 하나님이 결코 무능하시기 때문이 아니며 나에게 무관심하거나 사랑하지 않아서도 아니라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온전하신 섭리 안에 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신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참으로 훌륭한 섭리의 예비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위대하심, 선하심과 온전하심을 목도하고 할렐루야를 외치게 될 날이 매우 가까워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나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고 지금은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그 생명을 주신 나의 주님, 만유의 주권자께서 그 비밀한 섭리 가운데 나의 인생을 품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가장 힘들고 가장 두렵고 가장 낙심되고 가장 외롭고 가장 슬플 때에도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신 그 분이 다함이 없는 사랑 안에서 온전하신 지혜와 권능으로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왕이신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를 당신의 왕자와 공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창조, 계시, 구속, 최후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는 이 고백이 여러분의 삶을 능력으로 지배하기를 바랍니다.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시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여러분 각자의 삶의 주인이라고 할 때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2.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에게 깊은 안도감과 위로를 준다면 어떤 측면이겠습니까?


3.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습니까?

4. 여러분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에 삶의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놓치지 않고 주님을 믿겠습니까?


삶의 어려웠던 경험 속에서 주님의 섭리를 믿어 위안을 얻었던 체험이 있으면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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