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숨결로 빚은 말씀       

3. 우리는 성경의 신적 영감과 무오성, 그리고 믿음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믿는다.

 

본문 말씀    -  디모데후서 3:14-17

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들어가는

포세이돈 어드벤쳐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포세이돈 이름을 대형 호화 유람선이 대서양을 횡단하던 해저 화산의 폭발로 생긴 산더미 같은 해일로 인해 전복됩니다. 배의 compartment 하나하나 침수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읽습니다. 간혹은 선박 내부의 폭발로 사람들이 죽기도 합니다. 생존자들은 필사적으로 살길을 찾습니다. 생존자들은 무리로 나뉘게 됩니다. 우선은 안전하고 편해 보이는 쪽을 자꾸만 찾아가는 목사가 인도하는 무리, 그리고 위험해 보이더라도 선박의 구조를 생각해 구명의 길이 있어 보이는 험한 길을 헤쳐 나가려는 신부가 인도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신부가 인도하는 길은 때로는 속으로 잠수해서 다른 방으로 건너가야 하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배의 스크류 부분-물위에 마지막까지 있을 것으로 믿어졌던-으로 가기 위해 화재가 나있고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기관실 위를 횡단하다가 신부는 기진 하여 위로 떨어져 죽고 맙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사람은 신부가 죽어가면서 열어 놓은 기관실의 마지막 compartment 빠져나가서 구조대에게 구조를 받게 됩니다 길로 나가지 못하고 죽었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질 선택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을 선택하지 못함으로 그들은 필사적인 생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죽고만 것이었습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하면 언제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 인간의 유래와 종점,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지상에서 사는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추구했습니다. 말하자면 생명, 인간다운 ,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있는 삶을 목말라 사모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는 사람보다 그러한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였고 그들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러한 활동들은 나름대로 인류의 엄청난 문명을 일구어 내었고 헤아릴 없을 만큼 많은 철학과 사상과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인간이 가장 있는 ! 그것은 우리말로생명의 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지구상에 나와있는 인류의 정신문화의 소산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미 알렉산더 대왕시절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도서관에 무려 20 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대영 백과 사전은 어떻습니까? 사실 이것은 태산과 같은 인류 문명의 목록에 불과한 것인데도 2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이룩해 놓은 자랑스러운 문명의 울창한 속에 파묻힌 서있는 아름다운 그루의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에는 이런 글이 쓰여져 있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14:6)

 

성경의 권위와 신적 영감

교회 신조 교리 번째 항입니다. 같이 읽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신적 영감과 무오성, 그리고 믿음과 행위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믿는다.’ ! 우리는 성경의 신성한 영감과 무오성과 신앙생활의 모든 영역에 대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경전 정도로 여깁니다. 세상은 그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인간은 모름지기 이렇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사는 길만이 참된 인생, 인간다운 , 생명의 삶을 사는 길이다!’라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이 기록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은 그것을 거부하고 부정하겠지만 부정한다고 해서 아닌 것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진리들은 거부해도 상관이 없거나 생활에 약간 지장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진리, 성경이 말하는 모든 진리를 거부하면 결과는 엄청난 것이 것입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자의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12:49,50 같이 읽읍시다. 뿐만 아니라 구약에 기록된 모든 말씀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친히 하신 말씀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에게 친히 배운 사도들과 사도들의 1세대 제자들(속사도; 마가,누가....) 하여금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딤전 3:14-16 읽어봅시다. ! 그렇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입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성경에서 오직 한곳에만 쓰는God-breathes라는 용어를 씁니다.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넣으신 !'이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흙으로 만드신 후에 하나님은 당신의 숨결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흙으로 만든 지상의 실체에 신적 호흡(divien element)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living creature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은 구약 39, 신약 27책해서 모두 66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책은 BC 1400 경부터 AD 100년경 까지 1500여년에 걸쳐서 50 여명의 인간 저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입니다. 선지자.민족지도자.장군.사사.시인.예언자.율법학자.제사장.제왕.농부.유대교 학자.세리.의사.어부...등등의 모든 사회계층의,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훈련시킨 다양한 저자들을 동원되었습니다. 그렇게 긴긴 세월 동안에 산발적으로 기록,보전된 책들을 후대에 묶어서 성경이라고 하고 그것을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 되었다.’라고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몰몬 경이나 쿰란...?)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한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자가 무아지경에 빠져 기계적으로 펜을 놀린 것이 아닙니다. 저자의 인격과 받은 훈련과 기질은 오히려 살아 있고 하나님은 그들의 삶의 정황 속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그들의 인격을 통해 이해되어지고 공감된 내용들을 그들의 언어와 인격을 사용해서 기록하게 하시며, 동시에 기록하는 순간에도 적절한 단어와 문체를 사용하도록 계시자요 동력자이신 성령께서 도우신 것입니다.(축자 영감설) 또한 저자가 소유하던 족보.통계.기록들을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하신 계시의 기록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된 선지자들이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고 하나님의 권위로 말씀을 전하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자신의 권위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임명하시고 자신의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사도라는 apostolos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구약의샬리앜전승에 뿌리를 둡니다. 샬리앜 전승에서 보내심을 받은 (agent, messenger) 보내신 분과 인격과 법적 권위가 동일함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후에 사도들의 한마디는 절대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교회내에서 시끄러운 일이 생기고 갑론을박하고 분쟁이 생기다가도 사도들이 나타나서 눈을 지긋이 감고 수염을 쓰다듬으며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지...’하면 일시에 평정이 되곤 했습니다. 마가나 누가같은 사도들의 1 제자들(속사도)때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을 떠나고 기독교 인구가 많아지고 지역적으로 산재되면서 교회를 영적으로 통제할 있는 권위가 모호해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부들(Church Fathers) 많은 기여를 하긴 했지만.. 게다가 시기에는 기독교를 표방하는 이단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교회를 크게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베푸신 것이 바로성경의 편집입니다. 결국 선지자건 사도들이건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carry하는하나님의 말씀 것입니다. 인간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습니다.

 

초대 교회 때는  구약성경과 함께(주로 70인역이었지요?) 사도들의 복음과 서신들이 산발적으로 읽혀졌습니다대부분의 신약은 AD 50-100 경에 기록되었고 AD 100-200 수집되어 읽혀졌고 AD 200-300년에 위경들과 면밀하게 비교 검토되고 AD 300-400년경에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여 정경(Canon)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대로의 신약목록은 AD 367 아나타시우스가 모아서 AD 397 카르타고 회의에서 공식화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기록 시에 영감 하신 성령께서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교회에게 또한 영감하시어 편집과 합의에 도달하는 모든 과정을 또한 섭리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교회가 회의를 통해서 정경을 선정한 것이 아니라  사도성과 본문의 자증적 성격을 통해 이미 경성 스스로 보여 주고 있었고 교회는 그것을 후에 공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 성경의 경성 증거하는 수많은 문헌이 있지만 거듭난 신자라면 성령이 주신 영적 분별력으로 인해 성경에 내포된 하나님의 영감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게 되며 성경의 영적 권위에 대한 진정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안에 있는 성령의 음성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성령의 음성에 대해 응답하여 주십니다.

 

성경의 사도성

여기서 성경의 사도성 (apostolocity)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정경으로 인정되는 가장 중요한 것은사도성이었습니다. 내용이 아무리 교훈적이고 감동적이라 해도 사도와 제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만이 정경인 것입니다(교훈적인 외경은 참고로 있다.) 신약교회에서 사도성 문제는 너무나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목회자가 그렇습니다. 목회자의 개인적 자질이나 재능 보다는 그의 사도성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직책이 과연 그리스도로부터 왔으며 교회의 권위에 의해 그리스도로부터 임명된 사도들이 계속 권위를 안수로 계승시켜 자신에게 왔는가가 명백해야 합니다. 부분을 엄정하게 하기 위해 교회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람이 설교자로 부름받았다면 소명이 인정되어야 하고 많은 교육과 훈련을 거쳐 회중 앞에 서게 되고 앞에서 평가를 받아 비로소 강대상에 서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일부교단에서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합니다. 지나친 면도 있지만 리가 있습니다. 어떤 교단과 분파에서는 이것을 너무 쉽게 해버려서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신앙적이란 것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고 해석상 이현령 비현령 같아 보여서 누가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평론하기 힘든 점을 파고든 사탄의 궤계입니다( 양극단은 항상 긴장 상태입니다.)

 

목회자와 함께 교회 자체의 사도성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목회자건 교회건 그의 사도성 유무의 최종적 판결은 역시 성경입니다. 교회의 결정(카톨릭의 )이나 목회자의 개인적 소신같은 것이 강조되다 보면 성경의 권위가 은근히 무시되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무오성과 신앙행위의 모본으로서의 성경

본문을 다시 보십시다. 그리고 신조 3항을 보십시오. 우리는 성경의 무오성(inerrancy) 믿습니다. 하나님 자신은 무오하시며 자신을 무오하게 계시하셨음으로 성경은 무오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가 진실하여 믿을 만하다는 것입니다. (무오성에 대한 혹자의 공격에 대하여...) 완전성, 충족성과 더불어 성경의 무오성 또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 30,31. 21 25절을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한 모든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것들이 틀림없이 충족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계시된 이외의 다른 계시를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믿음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대한 최고의 권위

본문의 말씀처럼 성경은 삼위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에게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책과 글자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계시된 인격이신 삼위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이 영감하신 말씀은 신자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삶의 방식들을 말합니다. 그것이교훈과 책망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생명을 누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곡된 인격과 습관을 바로 잡아 줍니다. 히브리서 4 12,13절을 봅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의 인격을 왜곡시키고 인격의 모든 기능을 교묘하게 비틀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죄를 모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제일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이 표준인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신비하게 날카로와서 숨길 없이 인간의 심성을 파고 들고 사람들이 들여다 보지 못하는 무의식과 과거의 기억 속으로도 들어가서 파헤치고 악한 뿌리를 잘라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지도록 준비시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방식, 생명을 사는 길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을 받고 경건한 삶을 사는 길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그러한 삶은 종교적인 삶이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살았어야 그런 삶인 것입니다. 에스겔 20 13,21 등을 보십시오. 율법, 하나님의 말씀은 삶을 얻는 , 고금동서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고 찾아 헤멨던 바로 길인 것입니다우리는 이제 길에 들어 섰고 영생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하나님의 모든 선한 하기 위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 마땅히 살아야 삶의 방식을 말과 생활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하고 순종해야 하고 말씀으로 인해 치유되고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둔다는 것은 다른 사상이나 종교나 가르침, 특히 현대의 교육학 이론이나 인본주의적 사고들보다 성경이 올바르다는 뜻입니다. 현대의 사고들에 우리는 많이 젖어 있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조들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너무 이상주의적이라고 하거나 고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거나 아니면 compromise 하거나 아니면 거역해 버립니다. excuse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따르지 않는 일을 합리화 하거나 일반화하거나 버립니다. 신앙의 기준을 낮춰 버리거나 그래도 구원은 받지 않겠느냐... 등으로 위로를 삼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권위를 믿지 않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최고권위를 믿는다고 말로 고백하면서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시편 119 1-8절을 보십시오.  25-32절도 마찬가지입니다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119 97, 103절을 보십시오. 시편 42 1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가는

교리는 딱딱하게 고백하는 신조가 아닙니다. 우리의 진실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담긴 고백이어야 합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숨결로 빚으신 것입니다. 속에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무한한 호혜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배은망덕하게 타락하여 하나님을 저버린 인간에 대한 인내와 그치지 않는 사랑이 담긴 숨결이십니다인류역사의 오고 오는 수많은 세대의 헤아릴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때마다 영혼에 불어 넣으시던 숨결이십니다. 분의 말씀은 흠없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오류가 없으며 만왕의 , 만주의 주이신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유일한 최고의 권위가 있습니다.

 

만왕의 왕께서 십자가의 잔인한 죽음을 당하시고 보혈을 흘리심으로 마지막으로 내쉬신 숨결이 성경에 배어 있습니다.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에게성령을 받으라!’ 불으신 숨결이 배어 있습니다오순절에 강한 바람같이 임하신 숨결도...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보시며너희는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1)하시는 탄식의 숨결이...‘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3:20)’하시는 안타까움의 숨결이 베어 있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종이와 글자로 , 이상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그를 영감하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영과 공명하시는 음성을 들으며 인격을 만나게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시는 장엄한 선포 앞에 무릎을 꿇어야 것입니다.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영생의 길입니다. 영화포세이돈 어드벤쳐에서 험하고 남들이 택하지 않는 길이었지만 생명을 얻을 유일한 길을 자만이 살았듯이 사랑하는 여러분은 일생동안 성경을 가까이 하시고 사랑하며 말씀을 즐기고 그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은 성경이 기록될때 하나님이 영감하셨다는 말이 어떤 뜻이라고 생각합니까?
2.
여러분은 성경이 하나님이 친히 영감하신 무오(틀림이 없는) 말씀이라고 믿습니까? 각자 의견을 나누어 보십시오.
3.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모든 초자연적인 현상들(기적 같은 ) 믿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믿을 있습니까?
4.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따라서 살면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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