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단번에 이루어진 완전한 구원

7.우리는 대표자시며 대속자이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단번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죄책과 형벌과 죄의 권세로 부터의 완전한 구속을 믿는다.

 

들어가는 말

뉴턴(John Newton)이란 사람을 아실것입니다. 그는 천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로 유명합니다. 그는 1725-1807년에 산 영국 국교회의 성직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 성경을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여섯 살에 어머니가 죽고 기독교를 모독하는 친척에게 입양되어 자랐고 견습수병을 거쳐 해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그는 거칠고 방탕하고 몹시 문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두시간 동안 같은 욕을 반복하지 않고도 계속 할만큼 거칠다고 이름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군을 떠나 아프리카로 갔는데 회고하기를 ‘죄를 실컷 짓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포르투갈 노예상인을 만났는데 그의 집에 머무는 동안 백인을 미워하는 그의 첩으로부터 심한 모욕과 천대를 받았습니다. 흙탕에 떨어진 음식을 기어가며 먹게 했고 손으로 먹으면 채찍으로 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곳을 탈출하여 영국 상선을 탔으나 밤낮 술을 마시며 곤드레만드레 하다가 선장에게 맞아서 죽을 뻔도 했습니다. 스콧틀랜드를 바라보는 마지막 항해에서 심한 폭풍을 만나 배 밑창에서 거의 익사하게 되었을 때 그는 잊으려 애썼으나 그를 결코 잊지 않으신 하나님과 어릴 때 배운 성경구절이 생각났고 자신의 많은 죄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그는 정말이지 죄로 찌들고 철저하게 죄로 인해 망가진 자신의 삶을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입게 되며 거듭나게 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죄를 다 지었다고 회고한 죤 뉴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고칠 수 없고 변화시킬 수 없던 죄인을 구원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그의 구속의 은혜였습니다.

 

구속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이것은 기독교 모든 메시지의 중심입니다. 그의 대표요 대속자로서 치르신 희생적 죽음이 가져온 영원한 구속의 은혜!! 그것이 죤 뉴턴을 새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오늘 교리문의 구조를 잠시 보십시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수식어들이 나옵니다. 그 분은 ‘우리의 대표자요 대속자이시고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가 행하신 일은 ‘영단번의 희생적 죽음’입니다. 그 결과는 ‘죄책과 죄의 형벌과 권세로 부터의 구속’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집중할 것은 ‘구속’이라는 단어입니다. 모든 수식어들이 ‘구속’을 향해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 구속이 하나님의 어떤 탁월하신 지혜와 방법으로 인해 이루어 졌는가의 비밀을 소개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감탄해야 하며 그 지혜의 탁월함과 권능의 크기를 인정해야 하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자리로 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의 내용을 ‘그저 그런것’으로 쉽게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런 태도는 신앙의 맨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생을 두고 그 복음의 비밀을 찾아 누리고 즐거워하고 하나님에게 모든 주의를 집중하며 살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속(redemption)이 무엇일까요? 이것은 노예시장의 그림과 같습니다. 노예를 옛 주인에게서 값을 주고 사서는 해방시키는 것을 구속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 우리를 죄와 사탄과 율법과 사망의 노예상태에서 자유케 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구약의 그림으로는 ‘제사를 통한 화해’(속죄를 통한 화목), 신약에서는 ‘구속’이라는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행하신 구속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대표와 대신

교리문에서 예수님을 대표자.대속자.중보자이시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Jesus Christ died for me or for my sin’이라는 말은 헬라어상 적어도 3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나 대신, 나의 대표로, 그리고 나의 이득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대신’이라는 말에 익숙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죽어야 할 자리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substitute라고 합니다. 고려 시대의 보인제도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은 내 대신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 이것을 탁월하게 그려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벧전 3:18)라고 했습니다.

 

내가 받아야할 저주, 내가 받아야할 고통, 죽음을 대신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생동안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이 사건 자체는 너무나 엄청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죄를 인해서 내가 죽어야 될 그 자리에서 고통과 죽음과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은 정말 신비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죽을 때까지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더 깊고 깊게, 날이 갈수록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간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영적 삶의 힘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신앙인들에게 힘이 없을까요? 왜 신앙인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훌륭한 믿음의 선배의 길을 따르지 못할까요? 그것은 영적인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대속, 구속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송가 중에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 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라고 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면 세상에 있는 욕심을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크리스챤이기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곰곰이 생각할 때 영적인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게 대속의 주님을 바라보지도 않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왜 자꾸 경박해 집니까? 왜 무기력해 지고 형식에 치우치게 됩니까? 그것은 나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가 왜 형제자매를 가볍게 여기고 미워하고 못마땅해 합니까? 그 분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어떻게 여기실까요?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지 못합니까? 왜 주님께 드리는 것들을 아까워 합니까?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이것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있겠읍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도 우리가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그랬습니다. 로마서 5 6절이하를 보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보다 더한 사랑이 있겠습니까? 요한일서 4 9,10절입니다. 이것은 백만년이 지나도 알 수 없는 신비롭고 영원하며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보증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뇨?(8:32)

 

그리고 또 그는 우리의 ‘대표’이십니다. 영원한 신비속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을 그와 연합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Jesus Christ)!! 이것은 너무나 놀랍고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취급되며 그의 모든 운명에 동참되며 그의 위대한 상속을 공유하게 됩니다. 로마서 6장에 이 개념이 잘 나옵니다. 6:3-11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담이 인류의 대표였듯이 새로운 인류, 종말의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가 되십니다. 그의 죽음과 부활에 우리는 동참되었습니다. ( 2장에서 강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표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그것으로 우리는 자신의 죄로 인한 죽음-형벌을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탁월하신 지혜의 결정이십니다. 이 대표요 대신이신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으로 인해 우리는 죄책과 죄의 형벌에서 온전히 자유하게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예수님의 대표적인 죽음- 다시 말해서 우리를 내포하여 죽으신 죽음은 곧 우리 옛사람의 죽음을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6 6-11절을 보십시오. 이것이야 말로 십자가에서 행하신 기묘한 하나님의 역사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때, 첫 창조의 영역에 있을 때, 아담의 후예로서의 나-옛 사람(old self)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이것은 너무 중요하고 방대한 교리이기 때문에 오늘 다 강해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절대로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 주신 것만이 아닙니다. 나의 옛사람이 죽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담적 인간-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던 나, 세상의 풍속을 좇고 그 가치관을 지니고 살던 , 하나님 보다 나 자신을 의지하고 살려는 나-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 바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래서 옛사람의 죽음이 나의 삶속에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의 권세로 부터의 구속(자유케 됨)’이라고 합니다. 6:6절이 그것입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는 과거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에게 꼼짝 못하고 매어서 죄를 짓는 것이 삶의 주된 경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이 정상적(?)인 상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하나님을 향해 살게된 것입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구속된 것입니다.

 

주님의 대표적인 죽음은 이토록 놀랍고 신비한 은혜입니다. 사탄의 권세에 있던 우리를 죽여서 그 악한 영과 결별케 하고 성령이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오셔서 새로운 삶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신적 죽음을 믿고 계신다면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의 대표적 죽음의 효력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죄의 권세로 부터의 자유함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다니는 삶은 안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12:2)가 나타나야 합니다.

 

영단번의 희생적 죽음

이 말에는 예수님의 죽음의 신적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히브리서 10:12절의 ‘한번의 영원한 제사’라는 것입니다. 영단번(once-forall)이란 신학용어는 그의 죽음의 신성을 암시합니다. 9:11,1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의인이나 선지자의 죽음과 같지 아니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죽으심은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모든 죄인들을 넉넉히 구원하고 남음이 있는, 그리고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는 영단번으로 족한 희생적 죽음이었습니다. 이 대속의 죽으심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의 장위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피는 세세토록 흘러내리십니다. 리의 과거와 우리의 현재와 우리의 미래의 모든 죄악들이 그 피로 인해 씻음 받으며 그 희생적 죽으심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리를 감싸며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십니다. 시편 103 17절입니다.

 

유일한 중보자

히브리서 10:12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제사장’이심을 그립니다. 구약시대에 대속죄일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대신해서 유일한 중보자로 지성소에 나아갔던 대제사장이 예표했던 바로 그 영원하고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카톨릭에서 마리아나 성인들에게 모종의 중보자의 역할을 인정하는 듯한 것은 오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그 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 14-16절을 보십시오. 10 19절도 보십시요. 그리고 그는 ‘믿음의 창시자시요 완성자’( 12:2)이십니다. 이 복음의 진리를 알 때 여러분은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복음의 은혜 안에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구원의 모든 것을 이루시고 그 모든 은혜를 가지신 주님께서, 유일한 중보자께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이끄시고 나누시며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나가는 말

죄로부터의 구속, 죄의 형벌과 권세로 부터의 자유함을 여러분은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순히 여러분의 과거의 도덕적 죄에 대한 책임을 면제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차적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죄 그 자체’,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 삶의 모든 체계-를 말합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 반역적이며 모독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왔다면 그 죄의 권세로부터도 자유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것들이 즐거워지고 기꺼우며 하고 싶어지고 세상의 것들이 시큰둥해지고 관심이 줄어들고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지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게 되는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리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후 13:4,5

 

대신과 대표로 희생적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영원토록 이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아멘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구속'이라는 단어와 '칭의'라는 단어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해 보십시오. 그리고 각자 자신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았으며 칭의를 받았는지를 간증해 보십시오.

 

2. '은혜'라는 단어를 정의해 보십시오. 자신의 삶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들을 간증해 보십시오.

 

3. 여러분은 자신이 받은 구원이 변함없고 영원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4.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대신) 죽으셨다는 것과 나와 함께(대표) 죽으셨다는 말을 설명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습니까?( 2:20,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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