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의롭다하심을 주신 은혜

 

로마서 3:19-26

19.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2.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7.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됨으로 그 죄인이 모든 죄를 사함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되는, 자격이 없는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로서의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칭의를 믿는다.

 

들어가는 말

16세기 초반에 종교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중세기의 암흑 속에 복음이 매장되어 있었고 형식주의와 권위주의로 옷 입은 중세 카톨릭 교회는 세속에 깊이 물들어 영혼구원의 힘을 상실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당시 루터는 1507년의 급격한 사고이후 서원을 이행하기 위해 사제서품을 받았고 1511년 부터 수도사요 비텐 베르그  대학의 교수로 있었습니다. 경건한 수사로서 그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 했고 엄격한 심판주인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단한 고행, 금식, 철야와 선행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혼의 안식과 평안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애쓰고 땀흘리고 기도도 많이 하고 했지만 하면 할수록 자신의 마음의 깨끗함과 확신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인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의를 내비취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노로 들끓었습니다.

 

그가 로마서 1 17-나중에 사실 종교개혁의 중심구절이 될-을 강해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흉내도 낼 수없고 죄인들에게 주눅과 절망적인 죄책감만 안겨주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복음을 ‘차라리 우리에게 주지 않는 편이 나을 뻔 했다.’라고 까지 말한 바 있었습니다. 1510년 우연히 로마로 파견된 그는 순례자들의 무리가 The Scala Santa , 빌라도의 관사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계단을 맨 무릎으로 기어올라가는 고행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 공로를 쌓기 위해 함께 고행에 참여하고 있을 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영혼을 울리는 깊은 내적 음성을 듣고 그곳을 뛰쳐 나왔다고 합니다.

 

그는 바로 그 순간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종말의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선포될 수 있는 것은 율법을 지키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 고행과 선행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사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를 덕 입음으로, 그 의를 믿음으로 수용하는 일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의롭다 하심은 바로 종교개혁을 이끌어낸 진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개신교 신자라면 이 진리에 정통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참 모습

공부를 하는 학생이 학생노릇을 얼마나 잘했나를 알려면 졸업시에 그 사람의 성적을 보면 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인생을 잘 살았나를 보려면 그 사람의 사후에 그에게 내리는 세인의 평가를 보면 될 것입니다. (전임 대통령들의 변명; 역사의 심판을 보자!) 그러나 한 사람이 진실로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았나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평가하실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최후의 심판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후 1:7-9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책에 우리의 삶의 모든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18

 

인간의 참 모습과 그의 영원한 운명을 너무나 잘 축약시킨 말씀입니다. 경건치 않음(불경건)과 불의(의롭지 못함)!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밝히 드러낸 말입니다. 이러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으며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언도 받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경건과 불의란 어떠한 것입니까? ‘불경건’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죄의 본질입니다. 로마서 1 21-28절에 나오는 대로 십계명의 1-4계명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것-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도가 다르고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우리는 자신의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소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해야 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이 세상에서 우리 삶의 최고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구하고 그의 뜻을 사모해야 합니다. 온전한 경건의 사람,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17:4) 살았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소요리 문답 1번 ‘사람의 최고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그것은 불경건이며 바로 죄인 것입니다.

 

또 ‘불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로마서 126-32절의 인간의 죄행들입니다. 율법의 총화 중 인간에 관한-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범하는 죄를 말합니다. 경건함과 의로움을 늘 같이 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올바르게 인간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고 하나님은 모르는 것도 경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실로 불경건하고 불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생각치 않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고 맣은 날들을 보냈으며 모든 것이 그저 우연히 아니면 당연히 되어지는 것처럼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까? 여러분은 매분 매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까? 인간은 불경건하기 짝이 없는 존재입니다. 또한 인간은 얼마나 불의 합니까? 말과 뜻과 행실에서, 상상과 생각 속에서 얼마나 다른 사람에 대해 시기하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용서치 못하고 험담하고 탐욕을 품으며 너그럽지 못한지 아십니까? 지구촌 여러 곳에서 살육과 굶주림과 떼죽음이 벌어져도 우리는 마음의 가책이 없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불의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부도덕한 생활을 지탄하고 점잖고 신사같은, 매너 좋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고 자처하며 법을 준수하고 질서 있는 삶을 산다고 자부합니다. 종교를 도덕으로 만들어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참된 경건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도 의로울 수 있고 도덕이나 윤리를 가질수있다고 여기는 것! 하나님없이도 (하나님 만이 줄

수 있는) 힘을 가질수있다고 믿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깍아 내리는 것이요 불경건의 무서운 죄인 것입니다.

Bridge;그런데 이러한 불경건과 불의는 한마디로 ‘불의’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원래 ‘의’라는 말은 ‘관계에 충실함’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불의의 결과

불의의 결과는 현재의 삶 속에서 불행과 고통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잃고 갈등과 미움과 분노 속에 자주 빠지며 결핍과 불평을 떨치지 못합니다. 참된 평화가 없으며 진정한 기쁨과 삶의 참된 목표가 없이 그냥 안일과 좀 더 나은 풍요를 위해 진력할 뿐입니다. 하루살이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고 열심히 날아다니듯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이 자신의 영원

한 운명에 등한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시적인 삶을 위해서도 보험을 들고 염려를 많이 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많은 고통속에서 뼈가 빠지게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겪어야만 하는 불행과 불의는 나 뿐만 아니라 곧 이웃을 해치게 되고 사회와 국가와 전세계를 해치게 됩니다. 인류를 멸망의 두려움으로 몰아넣는 자원의 고갈, 공해와 무분별한 개발을 통한 생태계의 파괴, 인간성의 파괴, 불치의 병들의 등장등에 대해 인간은 나름대로의 진단과 처방을 내리지만 그것은 인간의 불경건과 불의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은 불의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경건함과 의로움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7장의 산상수훈의 결론에서 말하듯이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인생의 집을 뒤흔드는 날’, 그 날을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함

그러면 어떻게 인간이 의로와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을까요? 죄를 차마 눈으로 보지 못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만하는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설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인간은 역사를 통해 ‘선행과 지식’으로 그 길을 모색해 왔습니다. 지성을 계발하고 계몽하며 교육과 윤리로 선한 삶을 가르치며 지식과 과학의 발달로 삶의 자원을 증산하여 유토피아를 이루려 합니다. 혹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켜, 선행을 해서 하나님 앞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하였고 인류는 양차 세계대전이 보여주듯 파국으로 치닫는 역사의 종말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에서도 명약관화합니다. 여러분이 선하게 살 수 있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마틴 루터의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복음을 알기전의 루터의 영혼-그것은 바로 지옥의 두려움에 떠는 죄인의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수 있습니까? 그것을 받기 위해 우리가 치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이 선물로, 무상으로 값없이 베푸십니다. 그런데 죄악된 인간의 자존심을 이것을 거부합니다. 자기 의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러합니다. 우리는 이 값없이 베푸시는 선물을 그저 겸손하고 의지가지 없는 무력한 심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것을 은혜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말 철저하게 자격이 없는 자에게 무한하게 베푸시는 호혜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이것만큼 복된 말이 있을까요? 은혜는 인간에게 생명을 줍니다. 행복을, 기쁨을, 용서를, 관대함을, 그리고 회개함을 가져다 줍니다. 이 ‘은혜’가 우리같이 가치없고 악한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의 선포를 가져다 준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받으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음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무수한 인생의 성취와 업적이 쌓았어도 아무리 자기 나름대로 만족한 삶을 살았어도 최후의 심판대에서 ‘의롭다’는 선고를 들을 수 없다면 폭풍 속에서 무너질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입니다. 이 의롭다 함을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누릴까요? ‘믿음으로’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의 형벌에 처해진다는 것, 우리는 불의함으로 인해 절망적 운명에 있으며 죄와 사망의 그늘에 있다는 것,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혀 의를 이룰 능력이 없다는 것, 오직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됨으로만 의롭다고 여김 받는 것인데 또한 우리에겐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의지가지 없는 심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행위라기 보다는 은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통로요 수단일 뿐입니다. 은혜를 수용하는 그릇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깊은 사랑과 희생으로 마련하신 의롭다 하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당신의 어떤 의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어떤 노력도 현세와 내세에서의 삶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고 죽으면 여러분은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의 불경건하고 불의한 삶은 지금 이 순간도 여러분을 암세포처럼 죽여가고 있습니다.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파괴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작정하신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얼굴빛을 보며 참 평강과 기쁨과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시간,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의롭다 하심’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의를 여러분에게 옷입혀 주시마고 할 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감사와 겸손의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그래서 로마서 5 1절이하의 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이와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율법의 행위로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하심을 얻을 육체(자연인인 인간)가 없나니..( 3:20)라는 말씀은 자신의 선함과 노력으로 인간의 양심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제시된 삶의 기준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동의합니까?

3:19-24절을 다시 꼼꼼히 읽고 의견을 나누어 보십시오.

 

2. 여러분은 자신의 내면을 인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부끄럽고 악한 죄인임을 통감한 적이 있습니까? 몇 사람이 간증을 해보십시오.

 

3. 3:24절의 말씀을 각자가 이해한대로 자신의 언어로 풀어서 표현해 보십시오.(여러분이 전도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면서)

 

4. 여러분은 각자가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확신이 있은 후에 다시 범죄하고 실족한 바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5. 여러분에게 ‘의롭다하심’의 은혜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이 치르신 그 댓가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누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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