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리스도를 닮아 감

로마서 8:12-17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리스도를 닮아 감

9. 우리는 새로 탄생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품과 행동 면에서 점차 그리스도를 닮게 하며 세상에 증거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성령의 영원하신 내 주를 믿는다.

 

 

들어가는 말

부모들은 자식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면 몹시 기뻐할 것입니다. 특히나 요즘 한국같이 각박한 삶의 형편을 가진 곳에서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생존경쟁에서 우세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학교에 입학한 것을 기뻐하는 것은 그 학교를 졸업할 것을 당연시함으로 그러는 것이지 만일 졸업을 하지 못한다면 입학이 소용이 있겠습니까?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으레 좋은 교육을 받아서 자기 몫을 감당할 사람으로 자라갈 것을 기대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의 출생은 온 집안의, 가문의, 교회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는다고 하면 얼마나 큰 근심이 되겠습니까? 분명 살아있고 밥을 먹고 칭얼대고 하지만 몸과 마음이 자라지 않으면 언젠가는 온 가족의 근심거리가 될 때가 올 것입니다.

 

 

한 사람이 복음을 듣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신자가 되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세상이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아서 그렇지 그 일은 하나님의 생명을 창조하시는 역사요 그 개인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성도로서, 크리스천으로서 ‘자라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날 교회가 안고 있는 크나 큰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자라기를 거부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 이 고백이 처음이자 끝이고 전부입니다.

 

많은 경우에 심각한 문제는 교회 내에 영적인 갓난아기가 가득 차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 IVF 25주년 기념생사의 강사로 오셨던 영국의 John Stott 목사님의 말씀에 ‘오늘날 전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의 큰 난제는 교회 안에 영적인 갓난아기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로 채워진 교회는 사실상 교회로서의 아무런 모습도 지니지 못하고 기능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암울한 모습은 큰 시각에서 볼 때 한국교회가 책임져야할 부분이 분명히 있음을 우리는 회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분명 신자의 성숙에 관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벧전 2:1-3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8

 

성도는 반드시 자라야 합니다.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일 긴 세월을 두고도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과거의 그의 체험이나 고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란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 나라의 백성(벧전 2:9)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그것이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겨주시고 선포하신 것이지 우리의 말과 뜻과 행실은 그렇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옷입혀 주셔서 하나님의 앞에 설 수 있게 하시고 그 나라 백성으로 자녀로 그 앞에 고임을 받게 하신 것은 이 신분 때문이지요. 그런 신분을 주신 후에 이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이 그 자녀다운 백성다운 것이 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에게 영원히 ‘내주’하십니다.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그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심’이라고 말해도 됩니다(요 3:5). 종말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창조됨(새로운 피조물 됨)인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측면-내가 구원받았다. 기쁨, 능력, 사랑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이해는 객관적이고 중심적인 측면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 입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했다!’는 것은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그 나라로 영접하셨다!’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티끌 같은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당연한 의문, ‘왜?’가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나를 그분의 자녀로 만드셔서, 그분의 백성으로 만드셔서 복된 나라를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영원히 살 백성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 21:27

 

요한 계시록 21:27에서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이나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라고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

성경에서는 그러한 신자의 성숙의 목표를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온전한 인성의 모습을 말합니다. 그것을 여러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는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신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시고 증거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영원히 함께 계십니다.(마 28:20)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실 때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 드러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 5:22).

 

그런데 그러한 그리스도의 성품을 어떻게 드러낸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가만히 누워 있어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6절을 보면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하고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좇아 행한다는 말은 말씀을 좇아 행한다는 말입니다.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시고 책망하시고 바르게 하시고 의로 교육하시고 회개케 하시고 격려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하는 교인, 교회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강론하고 가르치고 적용하게 하는 일이 교회의 주된 일입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있어도, 아무리 뜨거운 기도회가 계속 열려도 계시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일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 그것이 관건입니다.

 

긴 여정

그러나 이 과정은 시간이 걸리는, 많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길입니다. 우리가 신자가 되어도 우리의 죽을 몸에 남아있는 육신의 습관- 죄성 때문에 깊은 내면의 투쟁을 동반하게 됩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도 그러했습니다. (데이빗 브레이너드, 로버트 멕체인 목사) 위대한 신앙인이란 죄와 아주 관계가 먼, 그런 외계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저히 죄와 직면하고 고통스럽게 싸운 사람들이며 자신의 추함과 악함을 통감하며 주야로 주님께 매달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자신이 죄 된 생각과 행동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함을 알고 당황하며 실망합니다. 절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싸움은 혼자가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성과 형편을 아시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인 눈으로 보거나 비난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너무 가혹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성령님께 있습니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이러한 성화는 한 사람의 전 인격에 걸쳐 일어나지만 이 세상에서는 불완전하다. 아직도 모든 부분에 부패의 찌꺼기가 남아있다. 그래서 화해할 수 없는 계속적인 싸움이 일어난다. 육체는 성령을,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는 싸움, 이 싸움에서 남아있는 부패는 일시적으로 패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거룩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속적으로 공급하시는 힘을 받아 새로 탄생한 부분이 궁극적으로는 승리한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성하면서 은혜가운데 자란다.’

 

자녀로서의 자의식

본문 12절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신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들은 ‘종의 영’이 아닌 ‘자녀의 영’,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내면에 계시면 우리에게 어떤 자의식을 갖게 하십니까?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의식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self-concept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의식만큼 성도에게 값진 선물이 없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막 1:11)라는 말씀처럼!!!

 

사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신자의 삶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라는 자의식이 심중에 있으면 다 되었다고 봐도 됩니다. 하나님을 ‘아빠’(Abba)라고 부를 수 있는 애정, 신뢰, 친밀감 말입니다. 하나님은 롬 8:29절과 같이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예정하신 것입니다. 아들은 자유합니다. 법과 제도로 다스리는 곳에서는 법을 어기면 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가정에서 법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개판을 쳐도 자녀는 자녀입니다. 그러나 철이든 자녀는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그의 사랑의 마음을 흠집 낸 것으로 괴로워하게 됩니다.

 

신자는 법아래 있지 않습니다. 율법을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갖지 아니합니다. 신자에게는 다시 정죄함이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신자가 범죄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죄책감보다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벌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사랑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훨씬 강력하게 성결의 소원을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회사의 사원은 출퇴근시간을 엄수하고 규율을 지키지만 아들은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필요하면 24시간을 일하기도 하고 전 생애를 바치며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합니다. 아들은 그 회사가 자기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신의 신분을 아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안 지키면 벌을 받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의식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열망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러한 열망을 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자녀의 모습으로 살기를 열망해야합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나타내지 못함으로 인해 심히 부끄러워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교회 내에서 아름답고 선한 모습들이 없습니까?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워하고 욕하고 험담하고 업신여기

고 무시하고 하는 일에 대해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임을 통감하고 뉘우치는 기색이 없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맏형이 되시고(29절) 우리는 그의 형제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분의 모습을 닮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여야 합니다. ‘나는 구원받았으니 됐다’는 것은 너무나 유치한 신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13절 이하를 보십시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름, 이런 말씀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잘 안 되고 있더라도 그런 소원과 열망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복되는 이야기 같지만 엡 4:14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에 대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입니다.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 무책임한 것들’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종종 제가 말씀드리지만 인간의 죄는 성숙을 거부하는 것-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투덜거리고 불평하고 날 알아주기만 바라고 무엇을 해주기만 바라고 영적인 갓난아기로 살기를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는다면 거듭난 것이고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난 아직 어리잖아요!’라고 항변합니다. 맞는 말입니까? 그것은 게으르고 무책임하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성숙을 향해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증인의 삶

마침 오늘 저녁 설교가 이것과 연관이 있어서 낮 설교에서 이 부분을 조금만 다룹니다. 성령 안에서의 삶은 개인의 성숙과 함께 증거의 삶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개인의 성숙과 분리되지 아니합니다. 개인의 성숙과 증거의 삶은 항상 같이 가야 합니다. Being에서 Doing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증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증거가 되어지는 것이야 좋은 일일 것입니다.

 

증거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성숙해야 합니다. 신자의 삶의 모습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게 할 수는 있지만 온전한 십일조를 내는 신자로 성숙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이 성숙한 신자가 증거를 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종종 열렬히 전도하는 사람인데 개인의 성숙은 너무나 안 되어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가는 말

신자의 삶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 목표를 향하여 교회와 신자의 삶의 형태를 조정하며 바로 잡아가야 합니다. 성령이 지배하시는 교회 내에서는 인위적인 조작이 사라지게 됩니다. 법과 체제가 필요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역사하는 자유의 영인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정치와 행정으로 교회를 유지하려는 것은 성령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인간적인 친교와 친목, 사람이 만든 이념으로 묶 여진 집단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령은 신자 각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인도하시고 움직이셔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곳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 안에서 성령을 좇아 살도록 삶의 몸가짐을 바로 잡게 되기를 바랍니다.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신앙의 성숙’이라는 것을 나름대로의 언어로 표현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성숙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또 자신을 살펴보고 성숙의 정도가 어떤지 말해 보십시오.

2. 신자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보십시오. (고전 12:3, 2:10-13, 갈 5:2,23, 요 14:16, 16:8, 13등)

3. 신앙인의 궁극적 목표가 어떤 것인지(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만드시려는 것인지)에 대해 성경구절을 들어 말해 보십시오. (엡 1:4,5, 4:13-15, 살전 5:23, 빌 3:21, 계 21:9-14)

4. 그 과정에서 성령님이 어떻게 일하실 것 같습니까? 각자가 이해하는 대로 자유롭게 말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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