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역사의 결승점을 바라보며

데살로니가후서 1:3-12

 

3.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4.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6.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교리 11. 우리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여 회개치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정죄를 실행하며 구속 받은 자들은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을 믿는다.

 

들어가는 말 

벤허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부귀를 누리던 유다의 한 명문 ‘허’가의 아들 유다, 그의 가문이 로마의 역적으로 억울하게 몰려 풍지박산 나고 그의 모친과 여동생은 감옥생활을 하다가 나환자가 되고, 자신은 노예로 팔려 고통과 증오로 얼룩진 삶을 살게 됩니다. 천신만고 끝에 로마의 해전에서 해군제독을 살려준 것이 인연이 되어 그의 양자가 되고 그의 원수 로마군 장교 멧살라와의 전차경기에서 그를 죽이고 승리 하여 복수를 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 예수! 의롭고 선하신 그분이 아무 까닭 없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은 모습을 보며, 그의 흘리신 피가 폭우 속에 섞여 흘러내릴 때 그 피에 씻겨 모친과 여동생의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은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멧살라에 대한 뼈에 사무치는 증오, 그리고 복수를 한 뒤에도 그의 마음에 남은 깊은 회한들이 보혈로 깨끗하게 씻겨 나간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벤허’의 대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을 가슴에 안고 극장에서 나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유다가 당하는 불행들, 아슬아슬하고 가슴 조이는 순간들, 그의 억울한 처지와 가족들이 당하는 비극들로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을 흘리며 멧살라를 함께 증오하던 모든 것들이 후련하게 씻겨 나가고 하늘을 우러러 환히 빛나던 유다의 얼굴과 같이 밝고 환한 모습으로 극장을 나서는 것입니다.

 

모든 소설이나 영화에 대단원이 있습니다. 대단원은 모든 이야기의 궁극적 의미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대단원이 없이는 무수히 발생한 사건들은 흩어져 있는 ‘레고’조각과 같은 것입니다. 대단원에 이르게 되면 그 많던 의문과 혼돈과 방황들의 매듭이 풀리면서 긴긴 이야기들이 품었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한 긴긴 이야기로 본다면 좀 무리일까요? 그것은 기나긴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11장을 ‘원역사’라고 부릅니다. 개인과 집단의 역사는 그것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 전형속에 자신의 고유명사을 갖다 넣으면 즉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구약의 나머지 부분과 신약의 모든 이야기도 역시 전형적인 역사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그를 등지고 패역 하였으며 하나님 없이 내 욕망과 계획대로, 내 힘으로 살기 위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며 온갖 죄를 범하고 자신과 이웃의 삶을 파괴하고 사망과 저주의 그늘에 살고있는 인간의 모든 이야기들은 구약의 이야기에 수렴이 됩니다.

 

 

세상의 역사관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역사의 의미에 무지할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의 의미를 가장 잘 그려놓은 도표는 잉크에 젖은 발로 하얀 종이 위를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왔다갔다하는 술취한 한 마리의 파리가 남긴 족적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Bultman은 ‘역사의 의미를 추구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렸다.’라고 했습니다. 헤겔이란 사람은 역사가 ‘정..합’의 현상을 나타낸다고 했습니다만 역사는 그러한 비인격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여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역사관들

성경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심을 선포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와 인류를 창조하시고 그들의 문명의 발달을 지켜 보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과 주변국가들을 이 땅위에 두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심대한 구속사역을 준비하시고 시행하셨습니다. 야곱일가를 애굽으로 보내시고 그 땅에 각각 7년씩의 풍년과 흉년을 허락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애굽의 주변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경했을 때부터 중동의 모든 정황을 주장하십니다. 앗수르 바벨론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멸망시켰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왕도 하나님의 역사 진행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다니엘서를 보십시오.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와 같은 역사를 주름잡았던 제국들 모두다 하나님이 장기판의 말 부리듯 주장하신 도구였습니다.

 

근대사를 장식한 대영제국도, 일본과 러시아와 미국도, 세계에서 가장 인구 많은 중국도 북한도, 대한민국도 하나님의 장중에 있을 뿐입니다. IMF, 남북정상회담도 모두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서 생길 수 없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탁월한 지혜의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선하시고 공의로우신 뜻 가운데 그렇게 섭리하셨습니다. 다니엘서 4 32절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장하고 계시며 그 역사의 대단원에 이를 때까지의 사건들을 묵시적으로 묘사한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의 사역을 성취하신 후 그 분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유대지방,사마리아를 거쳐 땅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시는 그 날, 복음이 충만하게 전해지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충만한 수가 찼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며 기나긴 인류의 역사의 과정을 종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완성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되는대로 우연의 연속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창조주신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그 분의 지혜와 능력에 의해 진행되며 계획된 종말, 대단원에 이르게 될 것 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사관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영화와 소설이 그 대단원에 의해 전체의 의미가 설명되고 가치가 주어지듯이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있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올 대단원으로 인해 인류와 개인의 역사의 모든 의미가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 처럼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날 것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대단원을 향해 줄달음 치듯이 우리의 인생도, 공동체의 역사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오늘날 교회에서 별로 많이 취급되지 않는 것이 재림과 최후의 심판에 관한 설교일 것입니다. 그러나 종말의 날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오늘을 살아 가는 우리의 신앙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며 궤도수정을 하게 하는 구속하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채우셔서 그의 사랑과 의를 따라 행하게 하시는 길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다음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셔서 완전하고 충만한 천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들

그 일을 완성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9 27절 이하를 보십시오.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사단은 하나님을 등진 사람들을 사주하여 죄를 짓게 하고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파괴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끝 날까지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복음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날까지도 돌아 오지 않을 때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 때에는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모습을 불과 유황이 타는곳( 14:11)이라고 듣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주님의 임재를 영원히 떠나 쫓겨나는 것 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지옥의 참상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성경에서 거기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곳은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곳이며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를 모두 축출하고 사단과 그 졸개들을 무저갱에 몰아 넣으실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밝히 보게 될것입니다. 변화산상에서 뵈이셨던 예수님의 영광의 모습, 밧모 섬의 사도 요한에게 잠시 뵈이셨던 그분의 모습을 뵙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없는 감격과 감사 가운데 그 앞에 엎드려 세세무궁토록 찬양을 올려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0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구속받은 우리들 안에서 그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필설로 말하기 힘든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들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화할 것이며 그 안에서 주님도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구의 필라멘트에 전류가 흘러 빛이 나는 것 같이(John Stott) 그 분의 영광을 볼 뿐 아니라 그 영광을 공유할 것입니다( 3:21, 요일 3:2).

 

우리의 재림신앙

우리는 재림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보면 ‘저 사람은 재림을 사모하는가 보다...’라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구원의 완성을 보장받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기쁨과 기대가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랑과 의로움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면서, 그러면서도 도달하지 못한 그것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주께 매달려 기도하며 성결과 거룩을 깊이 깊이 사모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그야말로 복음중의 복음이 될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돌아보면서 기도하고 인류의 고통과 아픔에 동참하면서 그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구하는 참된 신자라면 진실로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산다고 합니까? 종말에 주어질 영광스러운 변화를 사모하면서 현재의 삶에서 그러한 거룩을 추구하도록 동기부여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삼아 11절을 다시 읽읍시다.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도록...하소서!!’ 아멘. 우리가 자신의 공로로 합당하게 되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후에는 최선을 다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래서 5절을 보십시오. ‘선한 행동을 하게 될 믿음과 동기를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또한 12절은 결론적인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이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고 그들의 결심이 선행을,그들의 믿음이 행위를 낳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나타나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그들 그 분과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그들의 진정한 인간됨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재림을 믿는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고 삽니다. 그러나 인간과 세상의 마지막을 우리는 알고 삽니다. 그런데 한 인생의 종말은 세상의 종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신앙이 우리 개개인의 인생철학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가며 세상에서 얻고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구원 받은 자에 합당한 삶을 힘을 다해 살다가 주님의 재림시에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고자 소원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성공도 실패도 없고 세상의 자랑도 부러움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나를 내어주는 사랑과 희생의 삶! 조금이라도 더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삶! 그것을 위해 믿음의 경주를 할것입니다. 재림신앙은 현실도피거나 몽상주의가 아닙니다. 올바른 재림신앙은 현실을 가장 용기 있고 담대하게 살게 하며 또 가장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대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될것입니다. 아멘

 

 

토론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어떤 일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까? (살후 1:7-10, 고전 15:51-54, 21,22)

2.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는 언제일까요?

3.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까? 왜 기다립니까?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절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라틴어로

마라나타)라는 말은 초대교회의 예배시에 사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배란 본질적으로 ‘종말의 선취’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주여, 속히 오셔서 이 악한 세대를 마감하시고 당신의 통치를 이루어 주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4. 만일 재림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면 왜 그렇습니까? 각자의 생각을 솔직히 나누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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